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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11 20:00
과정중심주의
 글쓴이 : 채승범
조회 : 1,001   추천 : 0  

필리핀 마닐라에 살 던 시절, 선교사님 댁에는 ‘레이’라고 불리던 운전기사가 있었다. 레이는 원래 대중 운반교통 수단인 지프니를 운전하던 운전사였는데 마닐라에 있는 한국인 선교사님의 스타렉스 운전사로 일하고 있었다. 지프니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필리핀인들이 세계적인(?) 폐차 부품들을 조립하여 만든 지프형 자동차로 일반인들을 위한 대중 운송수단으로 많이 사용된다. 처음에는 미군이 버리고간 지프차를 개조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름도 지프니가 되었다고 한다. 이 지프니는 스패너가 있어야 앞 유리를 조금 열수 있고, 운행 중에 조수석 문짝이 열려서 우릴 당황케 한 적도 있었으며, 핸들은 기아자동차, 엠블럼은 멜세데스 벤츠가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름을 한번 넣으려면 뒤에 앉은 승객들이 모두 내리고 승객의자를 들어내야 나타나는 기름 주입구, 그나마 뚜껑이 없어 고무줄로 싸놓은 비닐을 벗겨내야 주유를 할 수 있으며, 타이어는 폐타이어에 고무를 한 겹 덮어서 본드로 붙여서 사용한다. 고갯길에서 소리와 매연은 엄청나지만 차량속도는 사람이 걸어가는 것보다 좀 빠른 뛰는 속도와 비슷하다.

천성이 착하고 괜히 인생이 즐거운 레이는 늘 웃고, 친절한 30대 초반의 애기 아버지였다.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누구와 싸움을 하거나, 작은 언쟁조차 하는 것도 본적이 없다. 착한 성품과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레이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운전 습관이 지프니만큼이나 엉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접촉사고도 많이 나고, 특히 엉망인 운전 습관으로 인하여 불필요한 기름 소모가 매우 심하였다. 내가 어림잡아 계산을 해보니 나쁜 운전습관으로 인한 불필요한 기름소모가 매월 레이의 월급만큼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레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디서 운전을 배웠냐고, 또 누구에게 배웠으며 면허는 어떻게 따게 되었냐고... 레이가 대답하길, 시골 사촌 형한테 지프니로 운전을 배웠고, 면허는 시험이 없고 그냥 돈을 좀 쥐어주니 관청에서 발급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는 정식으로 운전을 배운 것도 아니고, 한 번도 좋은 운전습관에 대하여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냥 차가 굴러서 목적지에 가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운전을 배운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도 이와 같은 결과 중심주의 사고방식은 필리핀 못지 않게 뿌리깊이 박혀있다. 음식점은 청결은 둘째고 맛있는 음식만 고객에게 제공하면 되고, 기업이나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든 경쟁에서 이기면 그 과정이 얼마나 비열했는지는 모두 용서되며, 학생은 성적만 잘 나오면 최고의 학생으로 취급되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레이의 지프니식 운전습관보다도 더 심각한 사회적 소모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한민국도 이제 전쟁 후 폐허만 남은 국가가 아니다. 당장에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굶주리던 시절, 다급했던 시대의 사고방식이 이제는 바뀌어야한다. 과도한 경쟁으로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결과중심주의를 버리고 항상 최선을 다하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과정중심주의 사회로 우리의 시대정신이 바뀌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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