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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11 20:00
관용
 글쓴이 : 채승범
조회 : 855   추천 : 0  

100년이 훨씬 넘어 낡고 냄새 나는 파리의 지하철에는, 때에 절은 누더기 옷을 여러 겹 걸쳐 입고 술 냄새를 풍기며 다니는 거지 아저씨들이 많았다. 그들은 반드시 알코올 중독자들이고 주거가 일정치 않은 홈 리스들이지만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그런 사람들은 아니다. 말하자면 그저 소외된 사람들일 뿐이다. 어떤 때에는 지하철에서 눈을 감고 있다가 심한 냄새가 나서 눈을 떠보면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여느 저녁 늦은시간, 빈자리가 앉아 있는 사람자리 보다 더 많은 붐비지 않는 지하철에 멋진 파리지엔느가 올라 탄다. 좋은 옷과 값비싼 액세서리들로 치장하고 향수 냄새도 은은하다. 오페라 구경을 갔다 돌아오는지 저녁식사 약속이 있었는지두 사람이 앉는 좌석이 마주보게 되어 있는 지하철에서 통로 넘어 내 이웃좌석의 먼 대각선 자리에 그 귀부인이 앉는다. 나랑 눈이 마주치는 자리다. 그리고 잠시 후 글로 형언하기 어려운 냄새가 나는 거지아저씨가 우리 칸에 올라타더니 한번 주~욱 자리를 훓어 보고는 내 쪽으로 오는가 싶더니다행히도(?) 그 귀부인 앞 자리에 가서 앉는다. 역한 냄새가 내 자리까지 진동한다. 내 자리에 계속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점점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지하철의 다른 자리로 옮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조금 떨어진 뒷자리에 앉은 내가 그럴 정도니 그 귀부인이야 오죽하랴. 하지만 그 부인은 변함이 없다.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결코 다른 빈자리로 옮겨 앉지 않는다.

 

관용(寬容)이란 나와 생각, 의견, 태도, 방식 등이 다른 사람이나 사상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로간에 다름인정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행위나 폭력에 의지하여 상대방을 제압, 굴복, 말살하지 않는 것이다. 관용은 흑백 논리와 반대되는 개념이고, 오히려 개인주의와 공생의 논리에 더 가깝다. 거대한 가족주의인 유교사상 하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낯 설은 사상이며, 이해하고 실천하기 어렵지만 꼭 배워야 할 사상이기도 하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말이 관용을 이해하는데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되지 않나 싶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말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죽을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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