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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2-24 21:20
영생교회
 글쓴이 : 북부해변장…
조회 : 1,355   추천 : 0  
27 년 전 저는 서울의 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빈민촌에 위치한 그 교회의 이름은 영생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이름에 걸맞게 영생하지 못하고 중간에 해체되어 없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에서 만난 교우들과는 지금도 만남을 이어가고 있고, 특히 그 교회의 전도사로 계셨고, 지금은 아프리카 최장기 한인선교사로 아이보리코스트의 선교 일선에서 사역하고 계신 황선교사님과도 교분을 이어가고 있으니 눈에 보이는 ‘영생’교회는 없어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는 지금도 ‘영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인연을 주었던 훌륭한 교회가 왜 영생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렸을까요?

영 생교회에는 오랫동안 교회에 충성하고 신실하신 집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제가 그분의 자제분과 동갑이니 지금 살아계신다면 아마 연세가 80세쯤 되셨을 것입니다. 어느모로 보아도, 또 누가 보아도 그 집사님은 교회를 책임지고 봉사해야 할 장로님이 되어야 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교회의 장로님으로 선출되신 분은 뜻밖에도 다른 분이었습니다. 새롭게 장로님이 되신 그 분은 사업으로 성공하셔서 재력도 있으셨고, 또 여러 방면으로 교회에 도움이 될만한 좋은 사회적 관계들을 유지하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새로운 장로님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성취가 교회에 큰 도움이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면에, 직분을 사모하는 마음도 있으셨던 그 집사님과 가족들은 실망과 함께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해한 것이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한국교회가 중직자를 선출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 로부터 몇 년 후, 수완이 좋으신 장로님들은 교회가 빈민촌에 있어봐야 ‘부흥’이 되지 않는다며 강남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당시는 한참 강남개발의 바람이 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넉넉치 않은 생활을 하는 분들이었고 교회 주변에 사는 분들이었습니다. 한 눈에 봐도 빈민가에서 자리를 잡은 교회가 강남으로 이사를 한다는 것은 무리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전 건축’이라는 깃발을 높이 걸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잠실 운동장 부근에 넓직한 교회부지도 샀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땅은 영생교회의 가나안 땅이 되었고, 그 땅을 밟고 통성기도를 하는 열심인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총력체제에서 감히 ‘성전건축’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영 생교회는 ‘성전건축’을 촉진하기 위해 잠실부지 옆 건물에 세를 내어 지교회인 잠실 영생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교회가 둘로 나뉘어지는 바람에 담임 목사님이 이번 주에 창신동에 있는 본 교회에서 설교를 하면, 다음 주에는 잠실 지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격주 설교체제로 두개의 교회가 운영되었습니다. 목사님의 빈자리는 전도사님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전세버스를 운영하여 창신동에서 잠실로 교인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잠실의 지 교회나 전세버스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본 교회를 저당 잡혀 받은 대출금으로 충당하였습니다. 마치 일반 사람들이 집을 저당 잡히고 대출받은 돈으로 사업을 하는 것과 똑 같은 형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잘 나가는 듯하던 ‘성전건축’이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어 느 주일 설교에서 황전도사님은 ‘교회가 이 빈민촌을 버리고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우리가 가려고 하는 잠실은 그 골목에만 교회가 일곱개나 있는데 그곳에 가기 보다는 이곳에 남아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는 설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눈치없고 고지식했던 황전도사님은 누구를 비난하려고 그런 설교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해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그 책임을 지고 황전도사님은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제가 그 분을 찾는 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서울에 오신 김에 연락이 되어 다시 뵌 것이 2003년이었으니까 딱 20년 만에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성전건축에 결정적인 전환점이된 계기가 생겼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땅’인 그 교회 신축부지가 86년 서울 아시안경기대회의 선수촌 부지로 지정되어 정부에 수용된 것입니다. 그 후에 이루어진 일은 대략, 교회 신축부지를 포기하면서 받은 보상금으로 빚 잔치를 하게 되었고, 두 개로 나뉘어진 교회는 각각 분립했으나, 부동산을 비롯한 경제적 기반을 모두 잃은 본 교회와 또 본교회의 자금지원이 끊어진 지교회 모두 결국 ‘영생’하지 못하고 해체되어 증발되고 말았습니다.

만 일 영생교회의 장로님들이 그것은 ‘성전건축’이 아니라 ‘예배당 건축’일뿐이라고 말했더라면, 그러므로 무리한 빚을 내어 강남으로 진출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서있는 그 자리에서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더라면, 교회는 일반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성장할 수 없는 특별한 조직이라고 주장했더라면 영생교회는 아마 지금도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해주는 훌륭한 교회로 존속해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제는 많은 헌금을 내는 부자가 아니며, 배움이 짧고 영향력 있는 직업이 없더라도, 성실하고 바른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교회의 지도자로 선출할 수 있는 높은 안목을 교회가 가져야 합니다. 겉보기에는 그런 분들이 사회적인 영향력이 없어 보이더라도 말입니다. 사실 진실보다 더 큰 영향력은 없는 법입니다.. 과거에 개인의 사회적 출세와 똑 같은 포맷으로 교회의 부흥을 이루려다 실패하고 해체된 영생교회를 통하여 오늘날의 ‘영생’할 수 있는 교회 모델을 그려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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