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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5-31 20:48
중고 수트 케이스
 글쓴이 : 채승범
조회 : 1,884   추천 : 0  

우리 동네에는 카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중고물품 판매점이 3군데나 있습니다. 저는 아주 가끔 이곳에 가서 중고물건들을 구매합니다. 가격이 보통 10불 안팎이고 비싼 것이 한 3,40불 정도하니 쇼핑에 부담이 없습니다. 어쩌다 정말 맘에 드는 꼭 필요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사게 되면 그 기분은 거의 ~봤다~!’ 수준이지만, 보통 구매하는 대부분의 물품이 필요보다는 쇼핑의 작은 즐거움을 위해서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느 평범한 날 그곳에서 중고물건 더미를 뒤지다가 우연히 근사한 여행용 양복 수투케이스를 발견했습니다. 양복을 구겨지지 않게 잘 걸어서 케이스 채로 반으로 접으면 단촐한 가방이 되어, 가지고 다니거나 비행기 짐으로 실을 수 있도록 인조가죽으로 예쁘게 만들어진 케이스였습니다. 그런데 원래 쇼핑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하다 못해 심지어 무시하기까지 하는 저의 마음에 그 순간 뭐라 표현할 수 없는감동 같기도 하고 회한 같기도 한 어떤 묵직한 느낌이 잠시 잠깐 스쳐가며 울컥하고 가슴을 저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과연 이 물건을 다시 사용할 날이 있을까…………?’

 

그것은 지나간 날에 대한 아련함, 그리움, 회한, 아쉬움 등등이 버물려진 무지게 색깔 같은 복잡한 감정이었습니다. 바닷속 깊이 어두운 곳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던 시커먼 무엇인가가 우연히 던진 낚시 바늘에 걸려 세상 밖으로 나온 것 입니다. 아마도 다른 많은 한국인 이민자들과 같이 한국에서 역동적인 생활을 하다가 호주로 이민 온 이후 정체된 듯 조용히 살았던 지난 시간들이 알게 모르게 저의 인생에 적잖은 퇴행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 수트케이스가 낚시 바늘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 감정을 찰라에 끄집어 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물건들에는 이와 같이 이야기가 녹아있고 또 역사가 있습니다. 회한과 그리움의 또는 아련한 추억이 묻어 있는 물건들도 있습니다. 6 18일 날 있을 여선교회 바자회에는 어떤 재미있는 물건들이 나올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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