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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11 20:38
대한제국
 글쓴이 : 채승범
조회 : 1,401   추천 : 0  

우리 교회의 일꾼인 임요섭군의 결혼식을 다녀오니 기분이 새롭습니다. 착실한 총각과 수더분한 처녀가 만나서 왠지 모든 일이 잘될 것만 같습니다. 예식을 보고 나니 마음이 편합니다.

한편 요섭군이 입었던 용포를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잡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시대에 평민은 일생에 한번 임금이 입는 옷을 입을 권리가 주어졌는데 그것은 人倫之大事라는 혼례 때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왕이라고 해서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조선의 왕도 황색의 용포는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중국 황제만이 입을 수 있는 금단의 색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왕도 황색 용포를 입었던 때가 잠시나마 있었습니다.

지난 4월은 청일전쟁이 일어난지 117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청일전쟁의 결과 맺어진 시모노세키조약의 제 1조는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을 인정하며, 조선에서 청나라에 대한 조공 헌상 전례 등은 영원히 폐지한다.’ 였습니다. 일본은 비로써 청나라의 영향력을 조선에서 제거하고 조선을 무주공산으로 만드는 데 일보전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황제를 칭할 수 있는 자주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청일전쟁이 끝나자마자 조선은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거대한 구조물인 영은문(황제의 은총을 맞이하는 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의 독립을 기념하는 독립문을 건설했습니다. 독립문의 현판은 그 유명한 이완용이 씁니다. 그리고 1897 10월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에 취임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노란색의 용포를 입었습니다.

독립국의 수도 한 가운데를 흐르는 나라의 강인 한강(漢江)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나라의 도시라는 뜻의 수도 한성(漢城)은 갓 독립한 제국의 수도로 적절한 도시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성은 황성(皇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일본인들이 그 이름을 좀 더 겸손한(?) 경성(京城)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 혼돈의 시절에 고종이 대한제국이란 국호를 사용한 것도 미스터리입니다. 대한이란 변한, 마한, 진한을 하나로 아울러 통칭하는 단어인데, 보통 새로운 국호를 정할 때는 이전의 화려했던 시절을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고려가 고구려의 뒤를 잇고, 조선이 고조선의 뒤를 잇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변한, 마한, 진한은 그렇게 후세가 기릴 만한 화려한 시절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젠 사료도 없어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황제들이 황색용포를 입었던 13년간의 시절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불운한 시절이었다는 사실만 확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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