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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11 20:32
유대지방 3_강대국의 길목
 글쓴이 : 채승범
조회 : 1,991   추천 : 0  

           유대지방은 중근동지방의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어 강대국들의 흥망성쇠에 따라 지배자가 바뀔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히타이트와 이집트,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가 차례로 유대지방을 침략했습니다. 유대지방과 유럽의 스위스 그리고 한반도가 다 비슷한 처지의 지정학적 의미가 있는 나라들입니다.

여러 강대국의 폭력적 통치 중에서도 로마는 원칙적으로 정복지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는 비교적 관대한 지배자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포용해줍니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주고 유대공동체 안에서 사형 이외의 법 집행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사법적 자치도 허용해줍니다. 그래서 로마지배 초기에는 두 민족이 무탈하게 공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유일신 신앙은 다신교의 로마와 근본적으로 공존이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거기에다 정신나간 황제까지 등장하여 자신을 신격화하고 유대 신앙을 모멸하고, 그에 편승한 그리스인들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유대지방에서는 반란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고대 중근동에서 그리스인과 유대인은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두 민족이 너무 달랐으며, 두 민족이 모두 상업에 종사하여 도시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서로의 경제적 이권이 많이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또 지난 세월 유대민족의 지배자였던 그리스인들이 이제는 같은 피지배자의 입장이 되어 로마의 통치하에 공존해야 하는 미묘한 관계도 서로를 불편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에 완전히 순종하며 동화된 그리스인에 비해 유대인은 약자였고 또 비주류였습니다.

로마 통치하에서 첫 대규모 반란은 유대지방이 로마의 통치에 들어간지 130여년 만인 서기 66년경에 일어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같이 로마에 협조적인 기득권세력과 열심당, 암살단과 같이 로마에 저항하며 기득권에 도전하는 반체제집단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즉 표면적으로는 민족자결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불평등에 대한 계급투쟁적인 성격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3년이 넘도록 로마 군에 저항했지만 결국 함락되어 처절한 파괴와 살륙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 후 960여명의 유대인이, 그 유명한 마사다요새로 옮겨 농성하다 결국 모두 자결함으로 이 반란은 4년여만에 막을 내리게 되고 유대인의 흩어짐을 뜻하는 디아스포라가 시작됩니다. 이 반란 기간동안 일백만이 넘는 유대인이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45년 후에 또 한번 반란이 일어나고, 60년 후인 서기 132년에 유대 지방에서의 마지막 반란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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