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회원 : 14명
썑썝怨꾩쥖
 
작성일 : 12-10-11 20:46
혼주포기선언
 글쓴이 : 채승범
조회 : 1,535   추천 : 0  

1980년대 제가 결혼을 하던 시절, 한국 남자들이 보통 결혼을 하는 나이는 27, 28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3년에 대학 4년 그리고 취업을 하고 나면 대개 그 나이가 됩니다. 제 친구들 중에는 결혼 상대가 있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해서 결혼을 미루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취업이 결혼에 필수적인 요소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해야 결혼생활도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남자는 16세부터 여자는 14세부터 성혼이 가능하다는 기록이 경국대전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도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조혼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이라고 하니 예전에는 더욱 이른 나이에 결혼들을 한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저는 25살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 당시 전혀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훌륭한 미래는 있었지만…)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결혼 예식에 있어서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것은 그 모든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실제로 신혼 여행지를 결정할 권한도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산을 좋아했던 저는 산을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제주도로 결정하셨습니다. 제주도를 설악산으로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제주도는 남들이 다 신혼여행을 가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남과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 부모님과 가능하면 남과 다른 선택을 하는 저의 의견이 갈렸지만 결론은 부모님의 의지대로 되었습니다. 반면에 호주 사회는 어떻습니까? 이곳에서 젊은이들이 결혼할 때 드는 평균 비용은 한국에서의 그것보다 비교적 적게 들어갑니다. 그리고 전세의 개념이 없어 셋집을 구하는데도 한국보다 몫돈이 적게 들어갑니다. 웬만한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 결혼을 하는데 전혀 경제적인 무리가 없습니다.

혼주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혼사를 주재하는 사람으로 보통 신랑 신부의 아버지입니다.  혼주란 문자 그대로 그 혼사의 주인입니다. 혼사의 주인공이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 신부가 아니라 그 부모님이라는 소리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봉건사회에서 특히 유교적 봉건사회에서 신랑, 신부가 경제적 권한이 없는 연소한 나이에 서로 얼굴도 모르고 결혼하던 시절에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혼주라는 개념이 대한민국에서 일만킬로미터나 떨어진 호주까지 와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자란 1.5세나 2세들은 이 혼주라는 개념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다들 사회에서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상태에서 결혼하기 때문이고, 성인으로서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지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입니다.

호주에 이민 와서 사는 우리들은 이제 어느 정도 이 혼주로서의 권한을 포기하는 선언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혼사의 주인공인 혼주 자리를 이곳에서 결혼하는 자녀들에게 많은 부분 넘겨 주기를 기대해봅니다.


 
 

Total 49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칼럼을 보내주세요. JinS 12-31 2587 0
49 사랑 채승범 10-27 1551 0
48 RSVP[답신요망] 채승범 10-11 1818 0
47 혼주포기선언 채승범 10-11 1536 0
46 한글날 채승범 10-11 1400 0
45 커피에 대한 횡설수설 채승범 10-11 1230 0
44 척박한 나라 일본 채승범 10-11 1204 0
43 진정한 기독교의 축일 채승범 10-11 1365 0
42 좋은게 좋은것 채승범 10-11 1126 0
41 젊은세대의 선택 채승범 10-11 1218 0
40 북부해변장로교회다운 모금 채승범 10-11 1162 0
39 대한제국 채승범 10-11 1224 0
38 인종청소 채승범 10-11 1180 0
37 의미있는 예배 채승범 10-11 1153 0
36 유대지방 4_반란의 도가니 그리고 잃어버린 땅 채승범 10-11 1457 0
35 유대지방 3_강대국의 길목 채승범 10-11 1483 0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