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인적드문 양평 골짜기에 살며 ‘꽁스’라는 잡종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곤 했었다. 힘이 넘치는 청춘의 강아지가, 매일같이 묶여 있다가 내가 목줄을 풀어주러 가까이 가면, 내 옷차림새와 신발을 보고 이 녀석은 이미 주인과 함께 산책을 간다는 것을 눈치채고 떠나기도 전에 거의 절반은 돌아버린다. 좋아서 펄쩍 펄쩍 뛰기 시작하는 녀석의 목줄을 풀라치면 손가락이 쇠줄에 끼어 피를 보거나 멍이 들기 일수 였다. 간신히 목줄을 풀어주면 집에서부터 산길을 걷는 한 시간 이상을 지치지도 않고 이리 튀고 저리 튀며, 덤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벼랑을 지나 계곡 물속에 빠지기도 하고, 조금만 부스럭 소리가 나면 쫓아가 새나 야생동물를 죽어라고 쫓아다닌다. 결국 주인에게 돌아올 즈음에는 얼굴에 가시가 박혀있고 또는 긁혀서 피가 나기도 하며 몸에도 가시와 잡풀들의 씨앗이 뒤엉키고 진드기들까지 달라붙어 만신창이가 되곤 했는데, 하는 꼴이 꼭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견생(犬生)의 마지막 산책인것 처럼 인적드문 산을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꽁스와 함께 산책하던 여러 날 중 어느날 내가 이 산책을 통해서 왜 이다지도 ‘행복’한 감정을 느낄까하고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내가 저 철없는 강아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베푸는 사랑을 받고 저렇게도 만족해 한다는 그 사실이 다시 역으로 나를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선순환이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지, 아니면 불행해질지 미리 점쳐질 수 있다. 이러한 예견이 충분히 가능한 것은 대부분 부모가 그들의 성장과정에서 행복한 미래와 불행한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는 남에게 사랑을 베풀기 어렵고, 결국 사랑을 나누지 못하므로 스스로도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이치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청년이 있는데 바로 ‘신창원’이다. 신창원은 어릴 적에는 똑똑한 아이였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매일 매일을 술로 살며 아내와 아이들을 두들겨 팼다. 견디지 못한 엄마는 어린 아들을 두고 어느 날 도망을 가버렸고, 홀로남아 아버지의 폭력을 받아 내던 그 어린 아이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와 거리를 전전하다가 결국 살인자가 되고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도망자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정작 그 교도소에 들어가야 할 사람은 신창원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의 아버지도 성장과정에서 신창원이의 할아버지로부터 그렇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폭력과 모멸감만 받으며 자라나 그처럼 망가져 버렸을 지도 모른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라므로 이런 일들은 대개 대물림이 된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100억원이 들은 통장을 물려받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100억원의 마이너스 잔고를 가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와 같다. 이것은 얼마나 큰 차이인가? 이런 악순환의 뿌리들을 자신의 시대에 끊고 자녀들에게 또는 남에게 큰 사랑을 주는 것만이 나 자신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며, 사회에 큰 공헌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마 유치환의 ‘행복’이란 제목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