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아시아로 오는 뱃길이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돌아오는 것 보다 지중해에서 이집트의 수에즈운하를 통과해서 인도양으로 나오는 코스가 9,000㎞나 짧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도양의 길목에 위치한 나라 소말리아가 문제입니다. 요충지에 위치한 만큼 소말리아는 해적 비즈니스로 악명이 높습니다. 이런 해적 탓에 많은 배와 화물들이 탈취의 위협을 받자, 사람들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오는 최단 항로로 북극항로를 ‘다시’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항로는 빙하가 녹은 덕에 2009년에야 처음 열렸는데,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기존항로보다 7,000㎞나 짧아 꿈의 항로로 불립니다. 서기 6, 7세기경에 바이킹들은 북극항로를 이용하여 아시아를 오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계사 책에 나오니 그런가 보다 하고 믿습니다만…) 그러나 이미 400년 전에도 네덜란드의 한 선장이 북극항로를 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습니다.

1596년 여름 바렌츠선장은 북극해를 통해 일본과 중국으로 가는 신항로 개척에 3번째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도 못하고 그는 북극해에서 빙하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선장과 17명의 선원은 빙하로 내려와 배의 갑판을 뜯어 움막을 짓고 영하 40도의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내며 북극의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식량이 떨어져 북극곰과 여우를 사냥해 연명을 했습니다. 비타민이 부족해 괴혈병에 시달리던 선원들은 8개월 후 빙하가 조금 녹자 작은 배 두 척에 나눠 타고 바다로 나와 50일을 표류했습니다. 결국 러시아 상선을 만나 구조될 때 생존자는 12명이었습니다만, 구조 직후 기진했던 바렌츠선장과 또 한명의 선원이 운명을 달리하여 모두 8명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었습니다.

1597년 11월, 1년 6개월 만에 신항로 개척에 실패하고 다시 네덜란드로 그들이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감동했습니다. 극동지역까지 운송을 위탁받은 화물에는 생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 옷과 약품, 식량 등이 있었지만 그들은 죽기까지 고객의 화물에 손을 대지 않고 고스란히 네덜란드로 도로 운반해 고객들에게 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얼어 죽고 굶어 죽으면서도 목숨을 걸고 신용을 지킨 그들 덕분에, 네덜란드 배에 화물을 위탁하면 선원은 죽을지언정 화물은 돌아온다는 소문이 전 유럽에 퍼졌습니다. 네덜란드가 17세기 유럽의 해상 무역을 독점하며 번영의 꽃을 피우기까지는 이와 같이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30여년 전 항로를 이탈하여 소련 영공에 들어갔다가 피격 당한 KAL기가 얼어 붙은 호수 위로

강제 착륙 당한 사건으로 우리에게 유명해진, 러시아 서북부의 도시 무르만스크 앞바다에 사람들

은 ‘바렌츠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오늘날까지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