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8년,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상책이 되지 못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 왕조를 멸망시키고 조선 왕조를 시작한 태조 이성계는 조선 왕조 초기의 불안정 했던 상황을 타계하기 위하여 고려왕조의 정신적 기반이었던 불교를 지양하고, 주자학 또는 성리학이라고도 불리는 유학(儒學)을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새로운 이념을 도입한 조선은 건국 초기의 어수선함을 제어하며 안정을 잡아가게 되지만 거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었다. 유교를 영어로는 Confucianism 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서양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해서 혼란스럽다는 Confusion 이란 단어에서 왔다고 한다. 그만큼 유교는 관념적인 교리였다. 유생들은 이치를 따지는 일에는 매우 민감했지만, 현실적인 일에는 둔감했다. 그들은 손으로 쓰는 것(writing)을 숭상했지만, 손으로 만드는 것(making)은 천시했고,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시했으며, 근대 사회로 나가는 관문인 상업을 업신여겼다. 그러나 권위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세계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일편단심’이었다. 덕과 예로서 나라를 다스리며 도덕을 정치보다 우선시하여 군주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유교정치는 개인의 수양에 의존한 ‘人治’ 의 이념이었을 뿐만 아니라 약자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강자의 이념이었다.

통치이념은 보통 사회정신 또는 시대정신으로 실현되는데, 억압적이며 종속적인 유교 이념은 도전이 없는 안정된 사회를 구성할 수 있었지만, 원천적으로 진취적이고 선구적인 사회를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선 유교사상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세계관에 있었다. 성리학의 세계관은 화이론적(華夷論的)이었는데 ‘화’만이 가치가 있고 ‘이’는 야만으로 간주되었다. ‘화’의 핵심은 세계의 중심인 중화(中華)이고 조선은 스스로 소화(小華)로 정의하였으며, 나머지 일본, 베트남, 몽골, 여진, 흉노 등은 오랑캐인 ‘이’이며 서양나라들은 ‘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수(禽獸)로 정의되었다. 이와 같은 계층적 가치질서는 중화에 대한 열등의식과 다른 오랑캐에 대한 우월의식을 갖게 하는 이중적 태도를 유지하게 하고 스스로는 소화의식(小華意識)의 족쇄에 갇혀 버리게 되었다.

이러한 성리학의 공리 공론에 맞서 17세기 중엽에 가서야 실학사상이 출현하게 되지만 (세계적으로 실학사상이 이렇게 늦게 출현한 문명국가는 없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사대부들의 외면으로 주류사상으로 자리잡지 못 하게 된다. 결국 조선의 유교는 한반도의 정치체제가 스스로를 속박하여 반도 밖의 넓은 세계로 나가는 것을 막는 정신적인 족쇄가 되었으며, 500여년의 궁극적인 발전 끝에 성리학 분야에서는 중국에서 유학을 와서 배울 정도로 발전하였으나, 그 반면에는 나라를 잃고 식민의 경험을 겪게 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