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뉴스에 뉴질랜드 남섬의 최대 도시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한인 3모녀가 자살을 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불과 몇 주전에 우리가 방문한 도시라서 관심있게 뉴스를 보았는데,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장례를 치르러 온 아빠까지도 장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가족들을 따라 갔다는 더 충격적인 뉴스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사업이 부도가 난 2년여 전부터 아빠는 유학중인 가족들의 생활비를 보내지 못했고, 그로 인해 현지에서 모녀들이 소유하고 있던 주택까지도 경매로 처분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고 합니다. 결국 절망적인 상태에서 현지의 가족들이 선택한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이민생활을 하며 주변에 많은 유사한 가족들을 보며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거래처의 사장들이나 주변의 지인들을 보면 보통 오래 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스스로 이겨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팔기회라는 아름다운 모임이 있습니다. 망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만든 비영리조직입니다. 이들은 망한 사람들이 손쉽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하고, 또 그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정신적 도움을 줍니다. 망해본 사람만이 망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보고나니 필자에게 최악의 해였던 2001년이 기억납니다. 그동안 이룩해 놓은 조직과 재물들이, 움켜 쥐려고 노력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모래와 같이 와해되어 사라져갈 때 느끼는 상실감이란 정말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수학 공식과 같이 제일 먼저 건강이 무너지게 됩니다. 항상 머리가 멍한 상태가 계속되고, 소화기관, 비뇨기관 그리고 심장 등에 문제가 생깁니다. 병원에를 가도 특별한 진단이 나오지 않는 ‘공황장애’ 입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무겁다는 내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

다음 단계는 ‘왜 이런 상황이 나에게 일어나나?’ 하는 처참한 결과에 대한 분노와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고 그 분노는 자책으로 귀결됩니다. 그리고 나면 이 고통스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가장 간단한 해결책인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으로써 이 힘든 현실을 외면하는 것인데 그 유혹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예전의 장군들은 전쟁에 참패를 하면 보통 현장에서 부하들과 함께 전사를 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그들이 용감하다기 보다 많은 부하들을 잃고 혼자 살아 나와서 느껴야 하는 상실감을 피하기 위하여 미련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죽음을 달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것이 바로 실패로 인한 상실감입니다. 그런데 이 상실감은 또 책임감과 비례합니다. 상실감이란 불길에 책임감이란 기름이 부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은 이러한 증세에 대해 최고의 효과를 가진 약입니다. 필자에게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준 것은 팔기회가 아니라 신앙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열심인 신자였지만 더 열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포기할 수 없고 주저 앉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용기와 희망을 잃은 상태에서 신앙만큼 재기를 위해 큰 도움이 된 것은 없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마지막 시도를 하는 동안 늘 감동적인 찬송과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오늘의 먹구름도 언젠가는 걷히고 또 다시 밝고 따뜻한 해가 비칠것이다.’ 라는 희망을 되뇌이며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결국 먹구름은 지나갔습니다. 따뜻한 해도 다시 비추게 되었습니다. 포기했다면 결코 다시 볼 수 없는 햇살입니다.

아랍 속담에 ‘일년 내내 날씨가 좋으면 땅은 사막이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땅은 비와 바람과 구름과 햇빛이 적절히 버물러져야 기름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 기름지게 되고 완성되려면 고난과 연단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비, 바람도 감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