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이나 먹었던 노처녀이자 내 친구였던 준코 다카츠카는 왕따였습니다.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또 나이 많이 먹은 할머니에게도 별 의미없는 존재였습니다. 왕따, 일본말로 이찌메를 시킬 때 일본 사람들은 아예 말을 걸지 않습니다. 마치 투명인간인 것처럼 무시하므로, 집단에서 제외시키는 방법으로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보통 일본인들은 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 주변사람들을 부추겨서 왕따를 시키고, 절교를 하는데 결코 당사자가 모르게 합니다. 당사자는 어느 날부터 만나던 친구들이 연락이 안되고 이메일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자연스레 눈치를 채게 됩니다. 또 서로 어쩌다 만난다 해도 결코 웃지 않고 그저 사무적인 표정만 보게 됩니다. 당사자 앞에서는 결코 껄끄러운 말을 입밖에 내지 않는 일본인다운 조용한 갈등 처리 방법입니다. 그러나 무성한 뒷담화가 만발합니다.

          프랑스인들은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왕따시키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 자기 마음에 안 들어도 그건 ‘그 사람’일 뿐이기 때문에 크게 부딪치지는 않습니다. 소위 말하는 ‘똘레랑스’입니다. ‘너’는 ‘너’, ‘나’는 ‘나’입니다. 입에 째져 있으니 너도 네 생각을 말할 권리는 있다는 겁니다. 나는 절대 동의하지 않지만… 너는 네말을 하고 나는 내말을 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신경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뒷담화가 조금있습니다.

           다양한 인종이 모인 호주에서는 가끔 맘에 안 드는 사람들과 부딪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뒷담화가 많습니다. 뒤에서 사람을 헐뜯는 것입니다. 방금 세사람이 함께 이야기하다가 한 사람이 자리를 떳을 때, 남은 두 사람중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방금 그 자리에서 떠난 사람을 헐뜯습니다. 그러나 당사자 면전에서는 항상 웃습니다. 그러니 웬만해서 충돌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왕따나 절교가 조용히 이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조금 요란합니다. 왜냐하면 한국 문화에서 뒷담화는 매우 비겁한 행위이기 때문니다. 누군가 내 뒷통수를 긁었다고 하면 보통 발끈하게 되고, 당사자를 불러 면전에서 따지고 부딪치게 됩니다. (뒷담화는 비겁한 짓이기 때문에 당연히 앞담화로 해결을 하려 하고 그러다보니 요란해집니다.) 서로 얼굴을 붉히고 흥분이 고조되면 큰판으로 한판 붙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내 남은 인생동안 다시는 안 볼 것처럼요. 그러나 누가 뭐래도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독특하고 개성이 넘치는 개인간의 갈등 처리방법은 이렇게 크게 붙었던 사람들이 어느새 다시 친해져서 서로 이전만큼 또는 이전보다 더 잘 지내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아는 한, 지구상에서 유일한 한국인만의 개인적 갈등의 처리프로세스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며 서로간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떤 처리방식이 가장 합리적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