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음주 문화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무절제할 뿐 아니라, 그러한 무절제의 결과로 초래되는 무질서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지나친 관용을 받는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그러한 생각이 호주에 와서 현지인들의 음주문화를 보며 많이 바뀌었습니다.

19세기는 영국이 세계를 호령하며 누비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지만 호주는 여전한 식민지였습니다. 호주의 음주문화는 그러므로 영국의 음주문화를 그대로 옮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의 영국사회는 상류층이나 하류층 모두 술에 쩔어 살았습니다. 해외 진출이 활발했던 군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군인들에게 배급되던 술은 사탕수수 찌꺼기를 증류해서 만드는 럼주(군납 럼주는 순도 75도의 술에 물을 절반 섞어 희석해서 배급) 였습니다. 보통 하루에 0.5리터를 조금 넘는 럼주가 사병에게 배급되었는데, 믿을 수 없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럼주를 매일 마실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군에 입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회나 군대나 술로 인한 폐해가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심지어 어떤 기록을 보면, 긴 항해 끝에 식수가 다 떨어져가는 한 군함의 함장이 식수가 바닥나는 것 보다 럼주가 다 떨어져 가는 것을 더 심각하게 걱정 합니다. 영국 수병들은 럼주만 계속 배급이 되면, 식수가 다 떨어져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럼주는 그야말로 영국 육해군의 "Life Blood"였습니다. 한 세포이 병사(인도인 용병)의 회고에 따르면, 영국군은 럼주 속에 뭔가 마법약을 집어넣는 것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럼주만 마시면 영국군은 매우 사나워져서 두려움을 모르고 싸웠고, 또 심한 부상을 입고 다 죽어가는 병사도 럼주를 조금 마시면 금방 되살아난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 '마법약'을 너무 많이 집어넣으면 병사들이 너무 흥분해서 제풀에 죽어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호주역사에서 식민초기 근로자에게 임금대신 럼주를 지급했다는 기록도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작년에 시드니 남부 크로눌라 거리에서 자신의 23세 생일을 맞은 한 청년이 특별한 이유없이 67세의 필리핀 할아버지를 거리에서 마구 폭행하여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그 청년은 할아버지를 헝겊처럼 다루며 연신 ‘일본놈을 죽여라~’ 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살인혐의로 기소된 이 청년은 법정에서 술에 만취해 자신이 왜 그 거리에 갔었는지도 모르겠고, 사건에 대한 아무런 기억도 없다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인간사회와 끊을 수 없는게 술이고 보면,

‘너희는 술 취하지 말라’고 하신 에베소서의 말씀이 지고의 진리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